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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4·19 혁명 기념일

89년생몽실이 2023. 4. 1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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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19일은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전국의 학생들이 일어나 자유와 정의를 쟁취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의 12년간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인 전환점입니다.

 

4·19혁명기념일

4·19혁명기념일은 매년 4월 19일에 기념하는 법정 기념일입니다. 제1공화국 당시의 부정부패와 독재,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학생들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제정 됐으며 국가 보훈처가 주관하는 기념행사가 있고, 지방 시·도 단위에서도 자치 단체 주관으로 행사가 진행됩니다. 중앙 행사는 국립 4·19묘지에서 헌화 및 분향, 기념사, 경과보고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행사가 열려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자유, 민주, 정의를 추구합니다.

 

 

4·19혁명의 배경

4·19혁명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는 간접원인과 직접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간접원인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종신집권을 추구하게 되면서 여러 정치파동과 부패로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며 1952년부터 1959년까지 일련의 개헌 및 정치적 테러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을 따랐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불평과 불만은 누적되었고 이는 4·19혁명의 간접적인 원인을 조성했습니다.

 

 

직접원인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던 자유당은 1956년 정부통령선거의 결과를 분석해 1960년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부정선거를 계획하였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의 미국 치료 여행을 기회로 원래 선거 계획보다 일정을 2개월 앞당겨 치렀습니다.

 

한 경찰관이 부정선거 지령서를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됐습니다. 부정선거에는 사전투표, 반공개 투표, 유권자 위협, 야당참관인 축출, 유령 유권자 조작, 내통식 기표소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때의 혼표와 환표, 득표수 조작 발표 등이 있었는데 조병옥이 급사하면서 이승만의 4선이 확정되었으나 국민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혁명의 도화선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4·19혁명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이 시작 됐습니다. 당시 민주당의 정부통령후보 유세를 막기 위해 학생들이 등교를 강요당한 것에 반발하며 시작되었는데 이 시위가 전국에서 학생 시위로 확산이 됐습니다. 학생들의 외침은 점점 하나로 모였고 같은 해 3월 15일 선거 당일, 마산에서 시민들이 학생 시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날에 시위는 경찰과 정치폭력배들의 진압으로 인해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했습니다.

 

4월 11일, 3월 15일의 사건 이후 행방불명 되었던 마산상고의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으로 발견이 되면서 시위는 다시 불붙었으며 4월 13일까지 매우 격렬하게 이루어졌습니다.

 

 

4월 19일 시위 시작

1960년 4월 19일, 고교생에서 시작된 시위는 서울의 대학교 학생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에도 경찰은 무차별 발포를 하였고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는 늘었으며 시위는 격렬해졌습니다.

정부는 서울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계속해서 사상자가 늘었습니다. 이후 같은 해 4월 23일, 시민들의 반발은 더 거세졌으며 시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

시위가 격렬해지고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자 대학교의 교수들까지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1960년 4월 26일 오후 2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일련의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산에서 시작되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에 이르기까지 사망한 사람은 서울에서 104명, 부산에서 19명, 광주에서 8명으로 모두 186명이며 부상자만 6,026명이었습니다.

 

 

4·19혁명기념일 행사

4·19혁명 기념일 행사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국립 4·19 묘지에서 이루어지는 기념식, 사건이 크게 발생한 지역에서 개최되는 기념식 그리고 학생 및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로 구분됩니다.

 

4·19혁명 기념일 행사는 사건이 발발한 이듬해부터인 1961년부터 국가 주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편에서는 국가가 주관하는 행사 말고 독자적으로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3월 30일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이 제정되면서 정부 기념일로 지정 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초반기부터 급격하게 축소되었다가 김영삼 대통령 정권에 들어서 다시 재조명 되어 기념행사 규모가 커졌습니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은 독재와 부패에 맞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이끈 역사적인 전환점입니다. 이 혁명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을 높여주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며 민주주의 정치의 되새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4월 19일은 잊지 않고 기억이 되어야 하는 날입니다.

 

 

자료출처

4·19혁명 -나무위키

4·19혁명기념일 -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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