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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은 독도의 날

89년생몽실이 2022. 10. 2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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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5일독도의날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우리 땅!!


한번쯤은 들어 봤을 "독도는 우리 땅" 노래의 가사입니다. 독도를 소재로 한 노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작자이기도 한 박문영이 작사 및 작곡을 하였고 가수 정광태의 대표곡입니다. 본래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정광태가 출연한 KBS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에서 처음 공개되어 국민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지금은 몇 번의 개사를 통해서 가사가 조금 바뀐 상태입니다.

 

이 노래처럼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입니다. 그리고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독도의 날 역사

독도의 날 역사는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법령상으로 정해진 기념일도 아닙니다. 2000년 민간단체 "독도수호대"가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독도의 날이 10월 25일로 정해진 이유는 대한제국 고종이 1900년 10월 25일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석 검으로 제정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2004년부터 꾸준하게 독도 수호대와 그 관련 단체에서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해서 국회에 청원을 하고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민간단체가 지정한 기념일이지만 일부 교육청, 국토 해양부 등에서는 이 날을 독도의 날로 기념하고 행사를 치른 적도 있습니다.

 

 

독도

 

독도는 독섬이라고도 하며 면적은 18만 7,554㎡입니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km 떨어져 있습니다. 노래처럼 외로운 섬 하나가 아닌 동도, 서도 및 구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입니다.

 

독도의 주소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입니다.

 

역사 속의 독도는 삼국사기에서 등장합니다. 신라 지중왕 13년인 512년, 하슬라주의 군주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왕국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于山島)로 불렸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과 무릉 두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독도의 명칭은 1471년에는 삼봉도(三峰島)로 1794년에는 가지도(可支島)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독도(獨島)'라는 이름의 유래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에 따라 울른도를 울도군으로 칭하고 울릉전도와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하였는데, 여기서 석도는 '돌로 된 섬'이라는 뜻으로 돌섬이라 부를 수 있는데 전라도 남해안 출신의 울릉도 초기 이주민들은 전라도 방언에서 '돌'을 '독'이라 불러서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으며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 '독도(獨島)'가 되었다고 합니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06년에 울릉군수가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입니다.

 

독도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약 12.4℃입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독도는 연평균 풍석은 4.3m/s입니다. 독도는 연중 안개가 잦고 흐린 날이 160일 이상이며 강우일수도 150일입니다.연평균 강수량은 약 1,240mm로 우리나라 평균 강수량과 비슷합니다. 겨울에는 폭설이 많이 내리는 게 특징입니다.

 

독도는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독도에서 확인된 식물은 약 60종이며 곤충등은 130종, 조류는 160종, 주요 어류로는 꽁치, 방어, 복어, 전어, 오징어, 임연수 등이며 패류로는 전복, 소라 홍합 등이 있고 해조류 및 기타 여러 가지 수산물이 있습니다.

 

독도에는 약 24명이 거주중입니다. 독도에 최초로 거주했던 사람은 故 최종덕 씨입니다. 1965년 3월에 거주한 이래 2022년도 기준으로 독도경비대 20명, 등대관리원 3명, 울릉도군청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 등이 거주 중입니다.

 

 

 

한국 영토 '독도'

독도가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하면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땅이 되었습니다.

 

이후 1693년에 안용복, 박어둔 두 사람이 울릉도에서 어업을 하다가 울릉도에 온 일본의 선원에게 잡혀서 일본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과 일본 간의 울릉도 영유권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에서는 삼척첨사 장한상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울릉도의 현황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이후 영의정 남구만의 건의에 따라 2년 한 번씩 관원을 울릉도에 파견하였습니다. 

 

일본 막부도 조선처럼 울릉도 영유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1695년 돗토리번에 울릉도의 소속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돗토리번이 울릉도와 독도는 돗토리번의 소속이 아니라고 답변을 함에 따라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령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막부는 1696년 1월 28일에는 도해금지령을 내렸고 이후 조선과 외교 문서를 통해서 1699년 울릉도가 조선령임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1870년 일본의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는 일본 외무성 관리인 사다 하쿠보 등이 조선을 시찰한 후 외무성에 제출한 보고서로 이 보고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속이 된 사정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877년 일본 최고 행정기구였던 태정관에서 내무성에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령이 아니라고 내린 지령도 존재합니다.

 

1900년 고종 황제는 칙령 제41호 반포하여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이 칙령에 따라 울도군의 관할 구역으로 울릉전도, 죽도와 함께 석도를 규정하였는데 석도가 바로 독도입니다.

 

1906년에는 울도군수 심흥택이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 시마네현 조사단으로부터 일본이 독도를 영토 편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강원도 관찰사와 중앙행정부에 이를 보고한 문서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본군 소속 독도"라고 하여 독도가 울도군의 관할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해 5월에 대한제국의 최고의 행정기구인 의정부에서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을 인하는 지령을 내렸습니다. 이 당시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 주장은 우리나라 국권에 대한 침탈 과정의 일환이었으며 독도 영유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로 국제법적 효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통치 행정 범위에서 독도를 제외시킨 각서가 있습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어 일본의 선박 및 국민이 독도 또는 독도 주변 12해리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각서입니다.

 

1951년 샌프라시스코 강화조약은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으로 해당 조약 제2조(a)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독도의 날 행사

독도의 날을 맞이하여 울산시교육청에서는 독도 체험관 방문, 독도 N행시 짓기 등을 준비하였고 국립수산과학원은 독도의 날인 10월 25일에 해양생물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기타 여러 지역의 교육청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여러 단체에서 대한민국독도협회에 후원금이 전달하는 등 풍성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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